작성자 운영자(juhos) 작성일 06-11-13 15:09 IP  61.149.***.**
제목 장춘의 어느 소녀에게 미안해서 No   320
내용

장춘에서 어느소녀에게 무척 미안해서 상황을 설명하느라고 쓴글입니다..

11월 11일
장나라 엄마와 31주년이 되는 결혼 기념일이지만 할빈, 장춘, 심양으로 이어지는 장나라의일정이 주최측(오리털 파카 회사)의 준비에 문제가 있어보여서 직접 동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중국 문화부나 공안국의 비준문제와 숙박 교통의 문제가 미덥지 않았던 것이다.
하얼빈에서 장나라로서는 새벽이나 다름없는 이른 아침인 아침9시에 기자회견을 하고 10시에 야외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일정은 무리 없이 소화되었다. 이른 아침에 누가 구경을 나오랴 싶었는데 광장 후면의 거리를 메울 정도로 많은 관중이 와 주어서 굉장히 고마웠다. 무대에서 퇴장하자마자 대기시켰던 차량에 올라타고 막바로 장춘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220Km떨어진 장춘의 행사장 백화점겸 호텔인 꾸마오따사(무역센터)에 도착하여보니 행사예정시각이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았는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공안원들이 둘러싸고 보호했지만 장나라가 이리저리 떠밀리며 백화점 엘리베이터 앞까지 진입하는데 일대 혼잡이 일어나고 팬들의 환호성과 관계자들의 고함소리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와중에 무용수 바오바오는 배꼽 피어싱이 떨어지고 공안원들이 장나라를 보호하는데 치중하다 보니 나머지 일행들은 관중 밖으로 떠밀려나갔다. 내 옷자락을 잡고 따라오던 직원 하나는 광팬으로 오해 받아 공안원에게 얼굴을 떠밀리며 넘어졌다.

겨우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자회견장에 도착하여 주최측을 만나보니 아니나 다를까 문화부의 허가를 취득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공안국의 허가가 있어야 사람이 모일 수 있으며, 문화부의 비준이 있어야 공연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공안국의 허가와 안전을 위한 공안원 배치는 되었는데, 문화부의 허가가 없단다. 이런 경우에 무대 위에서 인사나 이야기는 할 수가 있지만 노래를 부르면 안 된다. 반주 없이 즉흥적으로 몇 소절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즉시 주최측의 대표를 만나서 “오늘 공연의 모든 책임이 주최측에 있다.”는 각서를 요구하였다. 행사경험이 별로 없어서 준비에 서투른 회사의 사장에게 각서를 받아 들고, 장나라에게 가서 무반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상황을 설명하였다. 가수가 무반주로 노래 불러야한다는 말에 어찌 실망의 눈빛이 없으랴….그러나 각서를 받아내는 과정에 서로 큰 목소리가 오고 가는 모양을 지켜본 장나라는 흔쾌히 “알았어”라고 대답하고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무대로 가려고 백화점 1층으로 내려가니 백화점안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공안원들이 양편으로 늘어서서 인파를 몸으로 막아 조그만 통로를 만들었는데, 통로 자체가 사람들에게 떠밀려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장나라가 파카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내 등뒤에 얼굴을 묻고 딱 달라붙어 그 사이를 빠져나가는데 여기 저기서 한번이라도 장나라를 만져보려고 손길이 나온다. 나는 그 손들을 양손으로 막아내며 “량카이”(길을 비켜달라)를 외쳤다. 겨우 백화점 문을 나서서 무대에 도착하니, 눈앞에 보이는데 까지가 모두 관중이었다. 나는 장나라가 등장하자마자 공안담당자에게 퇴로 확보를 요구하여 백화점안의 통로부터 넓게 만들게 하였다. 무대 위에서 장나라가 인사말을 하고 있는데, 무대 오른쪽 공안원들이 관중에게 밀리기 시작하였다. 3분도 안되어서 주최측과 공안담당자 사이에 고성이 오고 가고 주최측의 누군가가 뛰어 나가서 재빠르게 장나라를 퇴장시켰다. 무대왼쪽으로 퇴장하면서 근처의 관중이 몰려들었으나 공안원들은 잽싸게 백화점 문을 닫아 차단하였다. 10여분 후에 대기실에서 만나게 된 장나라는 무반주 노래는 고사하고 인사조차 제대로 못한 아쉬움에 허탈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제 문제는 차를 타고 출발하는 문제가 남았다. 어떻게 많은 인파를 헤치고 출발하느냐를 놓고 주최측에서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더니 내 앞에 웬 조그만 여성 하나를 데리고 왔다. 체구가 자그마해서 장나라와 비슷하니까 파카를 입혀 모자를 뒤집어 쓰우고 내가 데리고 나가서 차를 타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관중을 속여서 장나라가 행사장을 떠난 것처럼 하자는 것인데, 좋은 방법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빨리 떠난 것으로 알아야 관중이 흩어질 것이고, 잠시 후에 진짜 장나라가 승차하는데 무사할 것이라는 주최측의 의견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북경나라문화의 또 다른 연예인인 정재연양과 서울 나라짱닷컴 직원인 조화영이 동행하기로 하고 백화점 일층으로 내려갔다. 가짜 장나라는 내 등뒤에 장나라 처럼 꼭 달라붙어 공안의 도움으로 겨우 인파를 헤치고 승차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정재연과 조화영은 차에 다가올 수 조차 없었다. 차가 급하게 출발하는데 차를 에워싼 군중들은 차창을 두드리며 난리가 났다. 그 와중에 내 양심을 아프게 찌르는 가냘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차창에 매달려 장나라가 한번이라도 손 흔들어주기를 바라는 어린 소녀의 음성이었다. “나라 지에지에”(나라 언니)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부르며 차창을 두드리던 어린 소녀는 가짜 장나라가 끝내 고개를 들지 않고 차가 떠나자 그만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나라 지에지에~~~”
그 울음소리를 잊을 수 없다. 내내 귀에 쟁쟁하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조금 위험했더라도 장나라가 직접 나왔고, 손이라도 흔들어 주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너무 많이 잘못하였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장나라가 10여분 후에 백화점을 빠져나와 320Km 떨어진 심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내게 이야기를 듣고 더욱 아쉬워 했다.

그 소녀에게 너무너무 많이 미안해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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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9